혼전순결 - 당신의 순결에 대하여

2015.08.30 21:48 - 들리나요..?

"개같은 한국걸레년들의 혐오스러움으로 인하여 수년간 기획했던 모든 글을 태워버립니다."


나의 선한 의지를 꺽어 버릴 만큼, 절필 시킬 만큼 개같은 한국걸레년들은 '유사이례'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외설스러우며 걸레갈보스러움을 자랑하는 씨팔년들로 전락했습니다.


대 한국 짬지들의 타락상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수십년간 세상을 등졌지만 회계를 말하기 위해 섰으나 개갈보년들의 혐오스러움에 정신이 아찔해지고,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지며, 완벽히 무의미한 것을 깨닫고 너희에게 주려 했던 것들을 다시 거두워 들입니다.


그러나 소름끼치게도 본인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하며 광기와 타락을 숭배합니다.


유대인이 나치를 위해, 재일동포가 혐한을 위해, 민주주의자가 모택동과 스탈린을 위해, 숫처녀가 강간범을 위해, 천사가 사탄을 위해, 미사포가 화장실 휴지로 쓰이고, 성경이 낙서장이 되며, 하나님이 루시퍼를 위해서 자신의 선함을 희생하고 헌신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선함을 모욕하는 것이며 돼지목에 진주는 바로 이를 뜻합니다. 소돔에서 탈출하는 롯 처럼 나는 너희와 분리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의 혐오스러움과 외설스러움 그리고 여자 특유의 어리석음은 나의 모든 글과 블로그 발행 의지를 꺽어 버릴 정도로 현실을 등지게 만들었으며 살인충동을 느끼게 만듭니다. 머지않아 심판이 있음을 알기에 악인과 멍에를 함께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순수함은 너희들에게 가당치도 않은 것이며,


사탄숭배와 진리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남성혐오와 순결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과 순결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동성애와 순결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게이 포르노와 순결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인터레지컬 포르노와 양남이는 순결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자위기구와 자위행위는 순결과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여자와 순결을 분리 시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다.


이러한 '기가막힌' 표현과 작금의 현실에 옷을 찢고 울부짖어야 정상이지만 이 미친년들은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하며, 때와 시가 어디를 지나오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은 지랄발광하겠지만 나의 선한 의지마져도 수치스럽게 만들었으며 분노로 바꾸어 부러트릴 정도로 너희는 가장 혐오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 질 수록 선한이들이 세상을 등지게 되는 모습은 말세를 의미하며 종국에는 심판을 의미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없을 예정이니 외부로 퍼간 출처를 모두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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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순결 - 당신의 순결에 대하여  (15) 2015.08.30
  • BlogIcon 하늘향기 2015.09.05 09:04 신고

    성은 아름답고 성스러우며 중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혼전순결은 성가정을 이루기전까지 서로의 몸과 영혼을 지켜주기 위한 고결하고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결혼 전까지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헤어질 수도 있으며 100% 완벽한 피임은 없습니다. 혼전순결은 단순히 육체적 순결만이 아니라 마음의 순결도 포함합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다면 그것도 정결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결혼 전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기절제와 인내를 위한 수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수련을 거친 남녀가 서로 만날 때 결혼 후에도 수없이 다가올 유혹을 강건히 물리치고 성가정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과 성의 상품화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상처입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성가정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축복과 은총을 누리기 위한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 혼전순결의 의미를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길 바랍니다.

  • 2015.10.07 17:12

    비밀댓글입니다

    1. BlogIcon 들리나요..? 2015.10.07 19:55 신고

      성적 욕망이 들때, 단순히 금욕만을 권하는 방법은 저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지금 내가 지키려는 가치가 미래의 내 모습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미치고 어떤 모습을 만들어 갈지,
      그리고 내가 어떠한 신념과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갈지 고민을 통해서
      가치관과 신념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는 의미와 의지를 찾고,
      성욕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본능이나 그것 또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과 사고와 판단으로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워 가야 합니다.
      박준님의 상황이 충분히 힘들겠지요.
      그러나 순결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박준님이 충분히 그럴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이 가능성을 굳게 믿으세요.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 BlogIcon 라온 2015.12.26 02:13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프리섹스주의를 가지고 있던 혼전순결주의를 가지고 있던 간에 어떤 가치관을 지니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급하게 굴지 않으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실천하는 게 요즘같은 '다양한'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 같습니다. 이 글이 제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 BlogIcon 들리나요..? 2015.12.26 18:57 신고

    2015. 12. 26 17:03에 댓글 달아주신 '안녕하세요'님에게...
    (답글을 달고 있던중에 댓글을 그냥 지우셨더라구요... 답글 기다리다가 지우신거 같은데 죄송한 마음에 일반댓글로 달아 놓을 테니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이 댓글은 딱히 비공개로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공개로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글을 읽고 이렇게 까지 와서 댓글 까지 달아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너무 기쁘네요...
    사실, 종교에 관련해서는 이글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답니다.
    우리가 흔히 성적인 윤리와 도덕 그리고 순결에 관해서 이야기 할때 종교에 입각한 주장들이 대부분이었지요.
    18세기 후반 계몽주의를 위시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법과 정치에 있어서 신/정을 분리시킨 세속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우리들의 사회구조와 문화가 오늘날에 이른 것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종교적인 입장과 세속화 된 사회속에서 두 가치는 충돌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이 종교적 신념을 위시한 시대에 뒤쳐진 금욕주의자들과
    21세기 세속적 사상과 기술을 발전의 수혜를 누리며 욕망을 채우고 해소하고 싶어 하는 시대의 조류를 아는 오늘날의 현대인들과의 대결 구도로 고착화 되는 것에 상당한 우려와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종교적이지 않고도 건전한 성윤리와 순결에 대해서 그 가치를 주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한 주변의 많은 이들도 종교적인 교리와는 상관없이 순결에 대한 가치를 마음에 품고 계신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저는 천주교인(가톨릭)입니다. 물론 세례도 받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다지 독실하고, 신실한 신자는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이자 거룩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그것은 저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깨달음을 주는데 상당부분 기여하였지만
    제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고 사는 현실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현실인 만큼 현실과 이상에 대해서 적절한 조화가 필요 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면 현실(속세)에 대한 많은 것들에 연민과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성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자면 종교 vs 세속주의의 대결구도 처럼 보입니다.
    이는 딱히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으나
    순결에 대해서 그 가치를 주장하는데 있어서 종교적 입장에서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종교라는 것이 정신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순결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종교적 가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종교적 입장에 근거하는 주장들은 마치 시대에 뒤처진 근본주의적이며 전근대적인 인물로 비추어 질 수 있다는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서 그러한 오해를 피하고자 꼭 순결이라는 것을 종교적인 입장에 근거하여 주장 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구절을 인용한 것이나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 한 것은 그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의 글에 관심과 애정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순결한 삶에 대한 의지를 이어나가는 님께서는 사람들과 미래의 자녀들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줄 수 있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삶의 한가운데서 써나가는 과정과 노력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 됩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하며, 존중합니다.

  • BlogIcon ㅇㅇ 2016.01.03 00:51 신고

    잘봤습니다

  • ㅋㅋ 2016.02.18 02:38 신고

    일단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물어보는게 예의 아니냐
    하기 싫어도 강제로 순결 당함
    순결 잃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잃는지 모르겠다 ㅅㅂㄹㅁ
    태어나면서부터 여자손 한번도 안잡아봤으면 인정해줌?

  • 저두 2016.03.02 01:18 신고

    잘 읽었네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전 아직 학생인데 요즘은 어려서부터 너무
    문란하게 노는것 같아요.

  • 2016.03.18 00:07 신고

    잘쓰셨는데 섹스할 자격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혼전순결 지켜야합니다. 자격없는 사람들이 섹스하니 문제가 터져나오죠. 문란한 건 상대적입니다. 눈만 내놓고 다니는 무슬림이 여인들이 보기에 처녀마저도 얼굴을 내놓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순결을 잃었다고 욕하니까요.

    1. BlogIcon 들리나요..? 2016.03.18 19:27 신고

      -욕망과 상대주의를 위한 관념의 부정은 스스로의 구속을 불러온다.

      요즘 현대인들은 상대주의적 합리화를 너무 좋아합니다.
      자유라는 개념과 상대주의를 아주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욕망과 쾌락탐닉적인 현대인들은 성을 '소비'하고 '기능적'인 관점에서 다루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감각적인 만족을 채워주기 때문에 "내 몸을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 오늘날의 성문화가 얼마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왜곡되어 졌는지 놀라실 겁니다.
      현대인들은 상대주의라는 잣대를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여기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없애 버립니다. 여기서 옳고 그름 이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며 사랑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상호존중은 자아의 만족과 욕망을 내려 놓는 데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며 타인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힘입니다.
      자신의 몸을 탐닉하고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며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또한 자아의 만족과 욕망을 내려 놓는 다는 말을 육신의 모멸을 추구하는 금욕주의라고 이해해도 정말 곤란 하구요.
      앞서 말했듯이 그만큼 오늘날 우리 현대 사회는 많은 것들이 그 본질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을 "세기말", "소돔과 고모라”, “롯의 때 보다 더한 환난"이라고 각종 종교계의 예언가들이나 여러 영성가들이 말합니다.
      "죄가 죄인 줄 모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하신 말씀이지요.
      오늘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열정(욕망)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바로 알 때,
      나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
      외로움 또는 고독 그리고 욕망과 상념들 따위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답니다.
      그렇지 않은 성적인 모든 열망들에 대한 발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허무주의, 염세주의를 마주하게 되고.
      자극은 또 다른 자극을 불러오기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즉, 자아의 함몰을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쾌락과 자극은 기능적으로 전락하고 타인은 도구와 수단이 되어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절대다수에 게서 보여지는 것이지요.
      이것 들에 대한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갖은 합리화, 더 큰 자극을 통한 변혁의 추구, 자기혐오, 나르시시즘적 자기애, 극단적인 에고이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등으로 말입니다.
      애초에 어리석기에 실수를 했고, 어리석기에 어리석은 방법으로 대처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공과 성장은 실수를 기반으로 하기에 그들에게 죄책감이나 낙인을 찍어서 그 굴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 자기반성과 직시를 통한 내면의 통찰을 이끌어 내는 것이 오늘날 성문화에 대한 유일한 접근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이도 인격적 모멸을 주는 것과 그러한 행동 자체에 대한 혐오에 집착해서 분노에 눈이 멀면 안됩니다.
      오로지 사랑으로서 영혼의 상처를 보듬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이 또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받아들이는 이도 (특히 성적인 영역에서의 죄는 다른 차원의 영역입니다.) 감당 할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행동을 합리화 하며 사고를 ‘강화’시키며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과 주변을 합리화 시키며 끌어들이고 세태를 왜곡시키려는 시도는 감당할 수 없는 업장이 됩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육신의 목마름과 번뇌를 충족 시키려 신기루를 쫓으려 하지 마십시오. 단언하건 데 정말이지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과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하는 지혜와 힘이 생긴다면 열정은 더 이상 음욕으로 다가오지 않고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종교는 무엇을 말하는가?

      '음란이 죄가 아니다', '내 몸을 사랑하는 거라 구요', ‘권리’, ’자유’, ‘주체성’, '성의 주체성', ‘성의 자유’, '성의 자기결정권',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달콤한 선동적 구호들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지만.
      실은 기독교와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종교와 성현(성인, 현자)들은 나를 비우고 자아를 내려 놓는 것을 통해서 성장과 사랑을 이룩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이.
      요즘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 한 듯, 어떠한 교리나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을 곡해하여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재해석을 하려는 시도들이 상당합니다.
      이를 테면 특히, 성문제에 있어서도
      "예수는 창녀들과 어울렸으며 남편이 다섯인 여자를 벌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도덕과 윤리의 옳고 그름을 부정하려는 그들의 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예수님을 비롯한 성인들은 "옳고 그름은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셨습니다.
      인류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서 왔다고 불리우는 예수님은 죄인은 구원과 회계로 나아가야 할 대상으로 보았지 정죄로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스스로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모든 관념적 잣대를 거두고 개인의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어떠한 관념을 부정한다”, “옳고 그름은 없다”, “모든 가치들은 상대주의적이다”라는 문장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매우 작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이해는 하고 사용하는지 의문이죠.
      오늘날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상대주의 란, 다양성과 개인의 개성을 의미하기에 개성이란 각자의 욕망이 다르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각자의 욕망을 인정한다는 말은 결국 인간의 파편화-고립-분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타인을 ‘타자’, ‘보여지는 대상’으로 만듬으로서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하여 현대 사회의 극단적인 비인간화-상품화 현상을 만들었지요.
      결국 상대주의적 관점은 우리에게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 고립을 낳았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만족과 자아의 추구는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상대주의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오늘날 상대주의를 매우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사실을 알 때.
      타인은 수단이 되지 않고,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즉, 성경에 나온 창녀들과 남편이 5명인 여성과 어울렸다는 말은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도구와 수단으로서 이용해서는 안된 다는 말이며, 예수님은 그러한 깨달음을 사랑을 통해 가르쳐 주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러한 행위를 인정한다는 말이 절대 아님을 유념해야 합니다. ‘음란은 다른 죄와는 달리 그 성질이 매우 달라 몸에 죄를 짓는 것을 넘어 영혼의 죄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성적인 에너지로부터 창조를 하고 그 열정을 바탕으로 생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음란은 본질에 대한 심각한 부정입니다.)
      그러면 욕망이 쾌락이 아닌, 열정이 사랑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욕망, 다른 말로는 열정을 궁극적으로 사랑으로서 승화시킨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이기와 욕심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자극과 만족을 착각하지 말며, 사랑과 쾌락을 착각하지 말며, 자유와 방종을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한한 선의 추구. 사랑만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려 오신 것이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부정과 육신의 무한한 자율권을 가지라는 말을 주시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무한한 욕망의 추구는 바벨탑의 예로 잘 보여집니다. 그것이 몸으로 행하는 만족의 죄일 때는 몸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 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그와 동시에 원수와 죄인을 단죄하고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업장. 카르마와 윤회

      경험과 인과율의 차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카르마. 우리는 볼 수 없는 그것의 끌림으로 인해 선택을 하고 사건들이 눈앞에 주어집니다. 그러나 보여지지 않기에 증명에 따른 갑론을박이 나뉘지요. 그러나 모든 영혼과 창조의 질서는 ‘균형’을 중요시 하며 사실상 이것이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음란이라는 주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과거 생에서 자극을 즐기고, 쾌락을 탐닉한 이들의 후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 하답니다. 잦은 간음과 수음(자위)를 한 이들의 전생을 보면 많은 이들이 영구적인 간질발작을 호소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간질 환자가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며,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하고 다양한 이유로 내 앞에 사건과 병리현상들이 생깁니다. 간질환자중에 쾌락추구적인 인물들의 전생이 일부 포함이 되는 것이지 절대 “현생의 간질=전생의 쾌락탐닉자”가 아닙니다.) 간질발작을 할 때와 몸에서 오르가슴을 느낄 때는 동일한 파장과 진동이 보이는데 이 때문에 극한의 쾌락추구적인 인물들은 후생에 영구적인 간질을 많이 얻습니다. 자극의 승화가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며 창조적 환희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닌 내 안의 만족으로 향할 때, 그 진동과 파장은 인간이 느끼는 감각들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까지 떨어지고 불안한 보습을 보입니다. 저급한 진동과 파장을 내뿜는다는 말입니다.
      다른 경우는 과거 아랍에서 수 많은 부인과 첩을 거느리고 타 부족들을 약탈하며 재산을 축적하고 모든 자극들을 추구하였던 이는 후생에서 업의 바다 속에서 헤매이며, 온갖 인과적 응보를 받고, 반대급부로 성불구자로 태어나 이성과 사람으로부터 괄시와 배척을 받았는데 전생의 그 죄가 한 생애로는 감당이 안 된 나머지 수십 생애를 더불어 현세의 지금까지 윤회하여 인과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잔인한 ‘응징’으로 보이지만 카르마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창조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타인에게 지은 죄이든 내 몸에 지은 죄이든 행한 그대로 돌려 받는다는 말이며,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타인에게 해서는 안됩니다.)
      단언 하건 데 오늘날 현대인들, 단순히 악덕 자본가 뿐 만 아니라 그 과실들을 먹고 자라는 현대인들의 후생은 ‘아주’ 볼만 할 겁니다. (현대인들의 사고와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회계와 봉사 따위로 해결되는 수준을 이미 넘었습니다. 곧 개입이 있을 겁니다.) 단순한 조롱이나 두고 보자는 식의 엄포가 아닙니다. 현재 이러한 인과적 현상들은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위한 거름이 될 겁니다. 교훈을 주고자 악역을 자처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은 더 이상 달라진 지구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됩니다. 더 자세하게는 쓰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신은 도덕과 상관없다.” 창조 질서와 동떨어진 인간의 해석은 언제나 합리화를 불러온다.

      메시아는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2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이는 내 몸에 대한 무한한 자율권을 가지라는 말.
      현명한 이는 그 가능성을 나와 모두를 위해 사랑을 기반으로
      무한한 창조적인 진보를 생각하지요.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전자에 가깝습니다.
      내 몸에 대한 무한한 자율권은
      성경에서 말 하는 종국에 파멸을 고하는
      바벨탑과 같으며, 일종의 자신에 대한 우상숭배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진보는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며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비롯한 부처님과 많은 성인과 현자들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나를 낮추고 비우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신기루를 쫓는 것을 넘어선
      본질을 바로 보는 지혜와 더불어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현대인들은 욕망의 발로를
      타인에 대한 도구화-수단화로서 전락시킵니다.
      그 때문에 사랑이 아닌 쾌락과 음욕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과 음욕을 혼돈하는 것을 넘어선 경계를 허물어 트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름은 없다', ‘구분은 무의미하다’, ‘관념을 없애자’라는
      사상적, 불교적 교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필요한 부분만 취하여 내면화를 통한 합리화를 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한 왜곡이며, 본말전도입니다.
      ‘무한한 선의 추구’, ‘사랑’, ‘이타심’이라는
      그 이상의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인류애’적인
      도덕적 관념이라 불리우는 ‘절대선’에 대해서는
      언급하거나 감히 역설하지 못 하더랍니다.

      -

      이슬람의 왜곡된 순결의식과 여성관을 비판하면서
      이와 더불어 순결에 대한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많습니다.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왜곡된 사안을 같은 방식으로 비판하는 것이기에
      논점과 비판의 방향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 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슬람은 종교라고 보지 않습니다.
      코란과 교리에서 여성과 이교도에 대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폭력을
      정당화 시키며 '보여지는 대상', '정복의 대상'으로 만 다루어지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이들의 왜곡된 사상을 종교로 인식하고
      그들의 행동과 사고를 기존의 그것들과 동일시 하며
      비판하는 것은 논점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입니다.

      -

      쓰다 보니 길어 졌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서보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 ㄷㄱㄷㄱ 2016.07.04 23:06 신고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학생이라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서 일수도 있지만요..
    으음.. 뭐랄까요
    인간의 생식행위를 하기위해(?) 만들어진게
    그런걸 했을때의 육체적 쾌감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것을 절제해야할 이유를 잘 대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감정은..
    뭐라고 해야할까요
    같이 있기만해도 행복하고 보기만해도 행복한..
    그런 감정일까요.

    즉 정욕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뭔가 섹스를 한다고해서 사랑이란 감정이
    막 샘솟고 이런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섹스로 인해서 좀더 관계가 깊어질수는 있겠지요.

    만약 제가 사랑하는 그사람이
    혼전순결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느낌일까요.

    물론 반대로 상대방이 하자고 요구해온다면
    그것도 당연히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깊어질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성관계를 맺더라도 맺지않더라도 상관이 딱히 없지요..

    성관계 자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성관계는 생명을만드는 행동이며 신성한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건 저에게 뭔가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마치 저에게 있어선.
    그건 그런용도로 쓸수도 있어.
    정도로 들리는 말로밖에 안들립니다.
    아직 제가 너무 어려서 일수도 있지요.

    다만 저에게있어서 성행위로(굳이 섹스가 아니더라도)
    쾌락을 느끼는것은 그렇게 그릇된 행위가 아니며
    생활에 문제가 갈정도가 아니면
    완벽하게 절제할 필요가 없다. 라고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런느낌..

    저도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야겠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다만 본문의 이야기들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 자선기부자나 봉사자같은.. 그런 이야기로 들립니다..
    살짝 샛길로 빠지지만.
    사람이. 다른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주는데 있어서
    어떤 이득을 챙길까..
    라고 한다면.
    역시. 아무런 속셈 없이 다른사람을 도와주는게
    진정한 봉사.. 라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걸로 행복을 얻기 때문에 한다고.
    행복을 얻는것이 좋으니..
    '다른사람이 행복하니까 저도 기뻐요'
    라고 하지만 사실
    '다른사람이 행복하'면' 저도 기뻐요..'
    라고 할까요.
    너무 꼬인관점일 수도 있지만.
    어느 관점에서 보면
    행복을 얻기위해서 다른사람을 이용하는것이죠.

    물론 다른사람 역시 행복해지니
    당연히 좋은일이구요.

    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깊이 해야겠지요.
    당장에 쾌락밖에 보지않는 행동을 한다면
    Out이랄까요.
    그저 자신이 생각했을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질수 있는.
    즉 매우매우 이기적인 생각을 해야겠지요.
    만약 제대로된 예방을 하지않아서 임신을 한다거나 하면
    결국 그에대한일로 저는 불행해지겠지요.
    앞의 쾌락만을 보는것은
    저에게 있어서 이기적이지 못한.
    행복해지지 못하는 행동이니까요.

    그렇기에.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지킬수 있는한
    그 안에서는
    자신이 쾌락을 탐하는 행위는 절제하지 않아도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이 언제나 옳은생각을 할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성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면 그것이 성장이겠지요.

    물론 그로인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서.
    아예 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손해보는 장사같습니다.
    마치 벼락이 무서워서 비오는날 우산 못쓰는 느낌..
    (물론 너무 과장된 예이기는 합니다만 적당하게 생각이 나질 않네요)
    물론 그것보단 당연히 실패할 확률은 많이 높겠지만
    저에게있어서
    그걸 피하기보단 풀어버리는게 더 득보는..
    그런 느낌입니다.

    저는 그래서 아직
    제가 혼전순결을 지켜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저 학생의 얕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시는게 현명하실수도..
    저는 잘 모르니까요 아직..

  • 관점 2016.08.25 00:52 신고

    본문 잘읽었습니다.
    가치와 가치관의 뜻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글이네요
    이글을 읽고 본인의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켔습니다.

  • ... 2016.10.19 03:47 신고

    그런데 혼전순결을 지키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성 차이로 이혼할리가 없다는건 아니라고봐요 한사람만하고 해서 비교대상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관계를 자주 하려하지않는다면 여자로써 사랑받고있지 않는구나 느낄수있지않나요?? 글쓴분이 남성분이신거같은데 보통 다들 남자가성욕이강하다고는 하죠 그런데 내남편은 나와 관계를 안가진다면? 아이를 낳기위해 몇번하고 그게 다라면? 여자입장에서 내가별론가 생각들수있어요
    정말 성행위를 번식을위해 하는거죠 ㅋㅋ 아 진짜 저런경우 있고요 그런걸로 이혼할수있어요 뭘모르시는거 같네요 ㅋ
    그리고 한남자와 햇다하더라도 주위에 들리는 이야기들로 비교가능합니다 ㅋㅋㅋ 주위에서 내남편은 맨날 날못살게군다면서 많이사랑해준다 이런말 들리는데 정작 본인남편은 맨날 잠만 쿨쿨잔다면 개서운하겟죠 ㅋㅋㅋ

    1. 제 생각은 다릅니다 2016.10.31 13:49 신고

      먼저 혼전순결을 유지해왔다는 것 만으로도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배우자에 대한 헌신, 사랑을 중요시 여겼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불구자가 아니고선 말이죠. 번식하기 위해서만 하신다는 그분이 정말로 혼전순결을 지켜오신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 다행입니다 2016.10.31 13:53 신고

    저 또한 혼전순결주의의 20살 남학생입니다. 주위에는 눈앞의 쾌락, 욕망만 보는 친구들이 대다수이기에 제 가치관이 가끔 틀렸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제 가치관이 확고해 졌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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